지난 글들(2004~2008)

인터넷에서 주장하기...(부제 : 인소불욕 물시어인(人所不欲勿施於人))

나사못 2009. 12. 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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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로 해석하자면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 정도가 되겠지요. 쉽게 말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니 남에게도 시키거나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 되겠네요.

언젠가 동양철학을 조금 공부하다가 위의 말에 대해 반박하는 주장을 본 일이 있습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논리인 듯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은 '내가 하기 싫은 일'='남이 하기 싫은 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원하고, 원치 않는 바가 같겠는가? 진정으로 남에게 하게하지 말아야 할 일은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가 아니고 '남이 하고자 하지 않는 바'이다.

결국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 아니라 인소불욕 물시어인(人所不欲勿施於人 : 남이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출지 말라)이 맞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처음엔 그저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깊이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소불욕' = '인소불욕' 이라는 공자의 등식은 어쩌면 '나'='남'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구석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들어 저와같은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동성애를 그 또한 하지 않을 것을 강요한다면 그건 폭력입니다. 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배부른 사람까지 억지로 밥을 먹여서는 안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찌 저와 같은 하찮은 사람이 공자같은 대철학자의 이야기에 감히 반박을 하겠습니까만은 비단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의 경우 뿐 아니라 전통적 유교에서 이와 같은 구석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편입니다.

이 글에서 길게 논의할 바는 못되지만 -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합니다...OTL -  고자와 맹자 사이에 벌어졌던 인성론 논쟁과 결국 유교의 법통은 인성(人性)  동질성, 내지는 일관성을 주장한 맹자에게 이어졌다는 것 또한 위와 같은 유교적 오류(물론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인간의 성(性 - SEX라고 생각하신다면 낭패-_-;;)은 일정한 방향과 동일성을 가지며, 여기에 어긋나는 것은 본성(本性)에서 벗어난 그른 것이다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 논의인지는 짐작이 가능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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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의 이해 수준 자체가 높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는 유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 인터넷에서 자신의 기준에 남을 억지로 맞추려 하는 시도를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 자신도 그렇기를 바라구요.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 하는 사람보다는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솔직하고 당당해 보이지요. 더구나 실천이라는 차원에 있어서는 명확한 당파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 더 앞서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명확한 주관을 갖고, 이를 실천하며, 자신과 다른 - 때문에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잘못된 -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려는 것과 자신의 생각만이 옳기 때문에 모두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에 대한 관용'이라는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주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틀렸다'고 여긴다고 해도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이 2%는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무오류의 신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할지언정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비판할지언정 공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동안 벌어졌던 수많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공격이 종교적, 정치적, 철학적 신념의 차이에 있어서 자기 주장이 강한 것과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모든 이들이 "나는 당신을 반대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당신이 말할 권리를 방어하겠다."라는 볼테르의 말을 한 번쯤 되새긴다면 세상은 훨씬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과 어지간히 다른 정도라면 그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이라고 치부하십시오. 그보다 조금 더 심각한 의견차이라면 "OOO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반박해 보십시오. 이 의견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오류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좀 더 본격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이것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내가 틀릴 가능성도 최소한 2%는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한 줄짜리 비꼬는 말로 비판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은 굉장히 세련된 풍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에게는 정성껏 올린 의견에 대한 비웃음으로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다른 의견을 표현할 수록, 그 다름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말과 글은 상세해지고 길어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200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