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03년 5월 9일 저녁.
난 그때 홀로 단골 감자탕집에 앉아 뼈해장국에 소주를 먹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혼자 술을 먹을 것은 - 집에서 먹은 것을 제외
하면 -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당시 나는 며칠간 계속된 야근에 완전히 지쳐 있었고, 머리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꾀병을 부려 퇴근하고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때 TV에서 그를 보았다.
2
당시 나는 나름대로의 절망에 빠져 있었다.
달리 생각하면 조금은 배부른 고민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절망의 깊이가 반드시 고민의 무게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다소의 절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즈음이었다.
나는 그해 2월에 대학을 졸업했었다.
졸업을 불과 몇달 앞두고 대학 입학시부터 목표로 했던 직업을 포기해야
했고, 짧지 않은 시간 준비했던 시험공부를 집어치운채 취업 시장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취업이 안된다던 시기에 취업에 대한 3g의 관심
도 없이 지내온 내가 취업이 잘 될리가 없었다.(심지어 토익 점수도
없었다.)
어찌저찌하다가 조그만 IT회사에 운이 좋아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회
사를 다니는 상황이 객관적으로 그닥 절망적이지 않은 것과는 별도로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무대에 순전히 나의 능력부족으로 떠밀려 나왔
다는 것이 나의 자신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상태였다.
그 와중에 3년간 사귀었던 여친은
"더 이상 오빠를 만나도 즐겁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그다지 보고싶지
않아. 미안해."
라는 해괴한 멘트와 함께 날 떠나 버렸고 나는 출생이후 처음으로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며 스스로의 내부로만 침잠하고
있었다.
그때 TV에서 그를 보았다.
3
내가 스타리그를 보기 시작한 이래로 나는 단 한번도 당대 최강으로
불리는 게이머를 좋아한 적이 없다. 한빛소트프/코크배 때의 임요환
이나, 그랜드슬램 당시의 이윤열, 그리고 최근의 최연성에 이르기까지
나는 당대무적이라고 불리는 게이머에 대해서는 어쩐지 정이 가지
않아하는 타입이었다.
임요환의 경우 나는 한빛소프트배를 보며 장진남의 허무한 패배를 아쉬
워했고, 코크배를 보며 홍진호의 등장에 환호했으며, 스카이배에서
마침내 그가 김동수에 의해 무너졌을때 나는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
었다.
아마 나는 당시까지... 거의 임요환 안티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TV에서 그를 보았다.
4
아마 난 그때 이미 한 병 가까운 소주를 들이킨 다음이었을 것이다.
"아... 임요환선수 오랫만에 저 눈빛 보는 것 같아요. 아주 그냥 이글
이글 타오르고 있습니다."
익숙한 엄재경씨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흘러 나왔고, 나는 반사적으로
TV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 오늘 스타리그하는 날이었군...'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응시한 TV화면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엄재경 해설위원이 언급한 그의 그 눈빛이 화면에 비춰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그 눈빛. 살아있는
눈빛. 마치 먹이를 노리는 표범과 같은 그 눈빛.
그의 그 눈빛이 마치 나를 노려보는 듯한 착각과 함께 나는 흡사 최면에
걸린 듯 모든 동작을 멈추고 TV만 바라보게 되었다.
5
프로토스전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
상대는 역대 최강의 테란 킬러로 성가를 높이고 있던 이재훈.
맵은 당시만해도 테란의 무덤이라 불리던 기요틴.
위치는 테란에게 불리하다는 대각선.
그리고 이 게임을 지면 탈락이라는 압박감.
모든 것은 그에게 불리해 보였고, 그의 팬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패배를 예견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맵에서 임요환과
이재훈이 10번 붙으면 임요환의 승리는 1번 될까말까한 상황이라고
이야기될 정도였다.
그가 선택한 빌드가 바카닉임이 드러나고,
그의 병력이 대각선 거리를 타고 진군할 때까지도,
그의 마린메딕탱크가 이재훈 선수의 드라군과 교전을 벌일 때까지도
그의 병력이 이재훈 선수의 심장부로 진입할 때까지도,
해설자들은 이재훈이라는 게이머가 테란에 얼마나 강한지,
바카닉과 같은 전략을 얼마나 잘 막는지,
그의 드라군 컨트롤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고 있었고,
오직 그의 팬들만이 가슴졸이고 있었다.
GG...
그러나 그는 승리했다.
6
나는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에서 예의 그 날카로운 눈빛이 사라지고 웃음기가 드리워질
즈음에도, 나는 마치 아직도 그의 두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의 패배를 예견하고 객관적으로 아무리 분석해 보아도
그의 승리를 생각할 수 없는 그 순간에,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에 대한 회의에 차 있을때도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
고, 승리를 향한 열망을 담은 눈빛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며 그 시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그는 나보다 어렸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그는 나보다 훨씬
성숙해 있었다. 반푼어치도 안되는 절망에 빠져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는 그 시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그것에 매진했고,
그 노력의 결과가 담긴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의 승리는 창출해냈다.
나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7
나는 얼마남지 않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내가 왜 스스로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할까,
내가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난 다음날부터 없는 시간을 쪼개 토익을 준비하고 시험을 봤고
취업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비록 내가 꿈꿨던 무대는 아닐지라도
내가 좀 더 치열할 수 있는 내게 맞는 무대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반년여간...
나는 마음이 약해지고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그 경기의 VOD를 돌려
봤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1년간의 경력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신입으로 입사했고, 나는 지금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금 이곳이 진정 내가 치열해야할 무대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주어진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깨부수고 변화를
가져왔다는 성취감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나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내가 그러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분명 우연히 술집에서 접했던 그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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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가 부진하다고들 한다.
물론 그 게임이 있었던 그 무렵에도 이미 그의 부진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근래에 들어 더욱 심해졌다.
최근 에버 스타리그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회의론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으며, 그의 챌린지 예선으로의
추락은 그런 이야기들에 불을 붙인 꼴이다.
성적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요 근래 그의 게임에서 예전의 그 눈빛을
보기가 쉽지 않아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다.
그 때 그의 눈빛은 그의 삶을 대하는 진지함을 고스란이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를 믿는다.
한 번 정상에서 떨어진 자가 다시 그 자리에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그의 그 눈빛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설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 모든 이들이 안된다고 할 때, 다시 한 번 비상할 것이다.
태양을 꿰뚫을 듯한 강렬한 눈빛과 함께.
그리고 나 또한 절망감을 느낄 때마다 그의 그 눈을 기억하며 전진할
것이다.
<200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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