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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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생각하는 자, 후회하는 자, 어리석은 자... 에피메테우스. 어쩌면 우리 모두를 지칭할 지도 모르는, 패자로 둔갑한 평범한 자의 이름. 우리를 가둔 생각의 상자밖으로 나간다면, 그를 향한 시선도 조금 더 따뜻해질 지 모르겠다.
by 나사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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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들(2004~2008)'에 해당되는 글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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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2.29
    내 삶의 게이머(4) - 완성, 그리고 그 뒤
  3. 2009.12.29
    우연히 인터넷에서 내 글을 발견하다
  4. 2009.12.29
    결혼 이야기
  5. 2009.12.29
    나카타 히데토시에 대하여
  6. 2009.12.29
    리니지2
  7. 2009.12.29
    내가 좋아하는 말들
  8. 2009.12.29
    시지프스의 신화
  9. 2009.12.29
    내가 가진 여자들에 대한 편견
  10. 2009.12.29
    내 인생의 담배 <하>

봉사, 혹은 선교를 목적으로 정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프간을 방문한 사람들과
그들을 인질로 잡은 탈레반.

그리고 살해당한 두 사람과
다행히 풀려난 두 사람.
아직도 억류되어 있는 열 아홉 사람.

나 또한 누구 못지 않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상황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의 생명이 아직도 걸려있고,
눈물로 밤을 지새고 있을 가족들이 있다.

지금은 다른 이야기는 좀 덮어두자.
생각이 다르든 어떻든, 지금은 소중한 생명들이 무사히 돌아오를 기원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 개념없는 개티즌 새끼들아...

(주 : 여기서 '개티즌'이란 일부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네티즌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님. 그 '일부'가 누군지는 본인들이 잘 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음)


<200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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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Prologue.

지금까지 살아오면 네 인생의 절정기는 언제였냐?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난 한참 고민하게 될 것같다.
그다지 큰 임팩트를 가진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시점을 찍어 그 때가 나의 절정기요... 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과거보다는 미래에 나의 절정기가 있지 않을까... 라고 아직 꿈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나의 부모님께 던진다면, 아마 나의 부모님은 주저없이 나의 17세를 떠올릴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17세의 전반기,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시절을...


1

그를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애시당초 나는 그의 팬이 아니었던 관계로 그가 보여준 그 어마어마한 포스에도 불구하고 그의 등장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저 상당히 잘하는 - 그렇기에 미래가 기대되는 - 테란, 하지만 경기는 재미없는 테란으로 내게 기억되어 있던 그가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두께로 내게 이름을 각인시킨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2002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어느날이었다.


2

내가 학교를 다니며 '공부' 혹은 '성적'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중학교 1학년때로 기억한다. 우연히 한 번의 시험에서 실력 이상의 결과가 나왔고, 그 후에는 그 결과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어 팽팽 놀기만 하다가 공부란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같다.

그 후로 몇 년동안은 신기하게도 특별한 이유없이 꽤 열심히 공부했던 것같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인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끄적끄적 공부를 했고, 성적이 오르고, 오른 성적이 좋아 또 공부하고... 그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 내 성적은 스스로 생각해도 놀랄만큼 올라 있었다.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 라든가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라는 고민을 치열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난 그맘때 별다른 취미도 없었고, 특별히 다른 할 일도 없었던 것같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집으로 왔고, 1~2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자연스럽게 책상앞에 앉았다. 새벽녘까지 책을 들여다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일어나면 또 학교를 갔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아마도 난 그 때 노는 방법을 몰랐거나 친구가 없었던-_- 모양이다.


3

그의 방송경기 데뷔는 iTV '고수를 이겨라'였다.
이 프로그램 출신의 프로게이머들은 꽤 많은데 이현승, 성학승, 나도현, 이중헌, 강도경, 김환중, 홍진호 등등이 그들이다.

그는 이때 아마추어 자격으로 당시 '랜덤최강'으로 손꼽히던 최인규 선수의 랜덤테란을 맞아 2스타 레이쓰로 출발해 레이쓰-탱크 조합을 선보이며 승리,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이후 IS팀에서 임요환, 홍진호와 같은 당대 최강의 게이머들과 동고동락하며 성장을 거듭한 그는 점점 무서운 선수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로템에서 앞마당을 먹고 저그를 상대로도 두 부대 가까운 탱크로 센터를 장악하는 게이머. 이제는 고전이 된 원팩 원스타 빌드로 한다 하는 프로토스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던 게이머.

테란전, 저그전, 토스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무서운 선수가 된 그는 마침내 2002년 초 KPGA 2차리그에서 같은 팀의 당시 최강의 저그, 홍진호를 2패후 3연승으로 무너뜨리고 우승컵을 차지한다. (바로 이 대회가 그를 내 기억에 새긴 대회였다. 홍진호의 팬이던 내게 당시 그의 임팩트란...)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4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는 새 오르던 내 성적이 절정에 다다랐던 시기가 바로 92년 초,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즈음이었다. '공부는 내 생활 -_-'이 되어 있던 나로서도 놀랄 정도의 성적이 내 성적표에 찍혔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한국 교육의 특성상 불과 한 학기동안 모의고사를 포함하면 대여섯 번의 시험이 있었고, 그 모든 시험에서 나는 만족스런 결과를 거두며 지금 이 성적이 단순히 우연이 아님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시점에서, 나는 '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시작한다.


5

홍진호와 박정석을 연달아 무너뜨리며 MSL의 전신이 KPGA투어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그는 마침내 2003년 초에 순차적으로 3개 대회의 결승에 오른다. 2002 4th KPGA 결승전과 Panasonic배 스타리그에서 조용호를, 그리고 3rd GhemTV 결승전에서 강도경을 만난 것이다.

이 세 개의 대회를 모두 잡아낸다면 전무후무한 Grand Slam을 달성하게 되는 상황이었고, `이윤열'이라는 이름 석자가 -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 어쩌면 스타크래프트의 영원한 아이콘 `임요환'의 앞에 놓일 수도 있게 된 시기가 바로 그 때였다.

그리고 그는 조용호를 각각 3:2, 3:0으로 그리고 강도경을 3:0으로 잡아내며 - 당시엔 없던 표현이지만 - `본좌'의 자리에 등극한다.


6

게임을 하다보면 `이겼다'라고 느끼는 순간 패배가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저그로 플레이하는 나의 경우는 센터싸움에서 한 두 번 테란을 잡아내고 이겼다고 생각하고 멀티나 늘리다가 어느새 갖춰진 테란의 한 방 병력에 주르륵 밀려 GG를 선언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인생도 그렇다.

3년이 넘는 순간동안 조금씩 올라간 나의 성적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 그리고 `이제 나 공부 진짜 잘해!'라는 건방을 떨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나의 그래프는 정점을 지나 내려오기 시작했다.

핑계거리는 많았다. 고등학교에 들어 시작한 써클활동, 나의 고1 여름을 강타한 - 그리고 그 후 몇 년을 지속된 - 첫사랑의 열병, 1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나의 곁에 있는 친구들과의 만남....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

흔히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쁜 친구'가 나를 버려놓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나태함이 나를 버려놓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2학기가 개막하고 내신에 반영되는 첫번째 성적표를 보며, 거기에 찍힌 몇백배로 커진 전교석자의 숫자를 바라보며 나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말을 잃었다.

추락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미 꺾인 그래프를 다시 올린다는 것은 2차 방정식 이상을 잘 모르는 내겐 어려운 문제였다.


7

Grand Slammer, 천재테란, 토네이도테란, 머신, 수달 (-_-.. 이건 아니구나...)과 같은 화려한 별명에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라는 말이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무적의 포스를 뿜어대던 이윤열.

`완성형 게이머'라는 표현이 생겨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윤열이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시간은 절대 짧지 않다. 비록 그랜드 슬램 당시의 포스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올림푸스 스타리그 16강,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 한게임 스타리그 8강, 질레트 스타리그 8강, EVER 2004 스타리그 8강, 아이옵스 스타리그 우승의 전적을 거두었다.

그의 이와 같은 기세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또 한 축인 MBC게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우주 MSL 16강, 당신은 골프왕 MSL 준우승, 스프리스 MSL 16강, 하나포스 센게임 MSL 준우승, TG삼보 MSL 3위, 스타우트 MSL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며 `항상 우승하는 이윤열'을 아닐지라도 `영원한 우승후보 이윤열'의 모습을 지켜나간다.

하지만 이미 `완성'을 이룬 자에게 남은 것은 추락 뿐인 것일까.

2005년,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의 충격 때문인지 그는 양대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고 충격적인 양대 PC방 리거로 등록된다.

그가 걷고 있는 `최강자'의 길을 앞서 걸었던 임요환이 그랬든 그의 그래프도 최고점을 지나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8

무너져버린 성적표에 다친 것은 선생님의 몽둥이 찜질로 달아오른 허벅지가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오기가 생겼고, 나를 앞질러 가버린 수많은 경쟁자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방심했고, 그래서 좀 놀았고, 그 결과가 이거다. 다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면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금방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일을 막론하고서라도 일단 정점에서 내려온 후 다시 올라가는 것은 처음 정점에 오르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한 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때로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히려 나태해지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상당했다 싶을 정도로 난 나 자신의 성적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꺾인 그래프를 되돌리는 것은 최초 정점으로 오르는 과정보다 힘들었다. 상당한 노력끝에 어느 정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저 거기까지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노는 방법'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버린 시점에서 난 더이상 전처럼 한가지에 잡념없이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정점을 기준으로 볼 때, 나는 실패했다. 내가 한 때 자리했던 정점과 비교한다면 한 참 떨어지는 어느 위치엔가 난 자리매김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나의 정점이었다. 나의 능력과 의지와 성실성은 거기까지라는것이다.

나의 재능의 수준 또한 거기까지였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성실하게 노력하는 능력'을 재능의 한 가지로 본다면 분명 나의 재능은 거기까지였으며,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대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9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점에서의 꺾어짐을 자신의 마지막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e스포츠에도 두 사람이 이를 증명하였으니, 황제 임요환과 천재 이윤열이 그들이다.

이윤열은 2006년에 들어 2005년의 지독한 부진을 비웃듯 신한 스타리그 2시즌에서 당시 최강의 포스를 보여주던 프로토스 오영종을 꺾고 우승하며 골든 마우스를 획득했고, 뒤이어 현재 진행중인 신한 스타리그 시즌 3에서도 결승에 올라 마재윤과의 맞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MBC게임에서는 이번 시즌, 한빛의 토스 박대만에게 일격을 당하고 탈락했지만 최근 팀동료이자 지난리그 준우승자인 심소명을 잡고 차기 MSL에 진출, 다시 한 번 양대리거의 자리를 확정지었다.

비록 신한 스타리그 시즌 2이후에 슈퍼파이트에서 마재윤에게 완패하고, 이어진 부진을 겪었지만 짧은 슬럼프였을 뿐 마치 2005~2006년의 부진극복을 통해 슬럼프 탈출의 노하우를 깨우치기라도 한 듯 전혀 달라진 기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정 이윤열의 위대함은 지금 보여주고 있는 그의 성적이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정상 - 내가 섰던 정상을 수많은 프로게이머의 정점에 달했던 이윤열이 섰던 정상과 병치하는 것이 무리라고는 해도 - 에 섰다가 미끄러져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려 애쓰는 과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던 나로서는, 무언가 한가지에 전념하다가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본 사람이 다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경험했던 나로서는, 한 번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던 그가 다시 정상을 향해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의 위대함에 경탄하게 된다.

설사 그가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가지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그래서 현재 최강자로 불리고 있는 마재윤에게또 한번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고 해도 그의 그런 위대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Epilogue.

최근 그를 `이운열'이라고 비웃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신한 스타리그 2시즌에서 준우승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아 보였던 그의 대진운 때문에 나온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다소 애매해보이는 케스파 랭킹 1위 등극과 `올해의 선수상'수상으로 인해 수많은 비난을 받는 것도 지켜보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결승에서 그는 상당히 유리한 전장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어, 결승전의 승패와 상관없이 `맵운이 이러니 역시 이운열' 또는 `맵빨로도 못이기니 역시 전 시즌 우승은 운빨'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은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그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한 그러리라 믿는다. 정상에서 바닥으로, 그리고 다시 정상권으로의 부침을 경험한 그라면, 그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을 난관을 모두 극복한 그라면, 그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 써갈 새로운 역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내가 극복하지 못했던 종류의 벽을, 아마도 내가 맞닥뜨린 것보다 훨씬 높았던 벽을 보기좋게 극복해버린 천재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경탄과 부러움을 품고.



<200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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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무려 7년전, 그러니까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에...
그리고 아직 기자를 꿈꾸던 시절에 한겨레신문에서 만든 '하니리포터'로 활동하며 쓴 글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그냥 새삼스럼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지금 읽어보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

'도대체 한겨레에선 무슨 생각으로 이 따위 글에 원고료를 줬을까...? -_-;;

어쨌거나 격세지감이다........ (이 때 쓴게 몇 개 더 있는걸로 기억해 검색해봤는데 이거 두 개밖에 못찾았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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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글>>

고엽제 전우회 어르신들께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얼마 전 한겨레와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 어르신들 사이에 벌어졌던 가슴아픈 사태를 국외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가슴 아파했던 이 땅의 한 젊은 대학생입니다. 더운 날씨에 고엽제라는 무시무시한 화학무기의 피해에 아직도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저는 지난 번 한겨레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고엽제 전우회 어르신들의 존재도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 그 사건을 알게되었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저는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베트남전에서의 양민학살 문제를 다루었던 한겨레의 오랜 노력은 마땅히 칭찬 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겨레는 오랫동안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려온 여러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해온 매체였기에 지난 번 사태는 더욱 비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께는 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젊은 시절 베트남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나라의 전쟁에 그저 나라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라 믿고 그 먼 땅에까지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던 어르신들께,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따랐던 어르신들께 도대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 분노의 표출 방향이나 방식에 다소의 오류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먼 이국 땅에서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목숨을 걸었던 여러분께 돌아온 것은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무서운 장애임을 직시할 때 누가 어르신들의 분노를 욕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이해하고 함께 해야 할 분노가 아니겠습니까.

결국 지난 번 한겨레 난입 사태는 - 이런 표현밖에는 찾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 오해로 인해 서로를 부둥켜 안아야할,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한겨레와 고엽제 전우회 사이의 불행한 충돌이었습니다. 다행히 어르신들께서 먼저 사과를 하시고 한겨레가 이를 수용해 소송을 취하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늦게나마 뒷마무리가 잘 이루어 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 요즘 전 놀랄만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도 뉴스나 신문을 통해 알고 계시겠지만 소위 '국민의 정부'에서 국고를 들여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제 귀를 의심했습니까. 박정희가 누구입니까. 쿠데타로 정권을 강탈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말살한 독재자가 아닙니까. 아니 그보다도 아무 상관없는 남의 나라의 전쟁에 이 땅의 젊은이들을 참전시켜 오늘날 어르신들을 고엽제의 아픔에 시달리게한 직접적인 장본인 아닙니까. 미국이 자신의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한 부당한 전쟁에 자청해서 우리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수많은 젊은 목숨을 앗아가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고엽제 후유증과 같은 피해를 불러일으킨 독재자가 아닙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고통과 싸우고 계신 어르신들이 이렇게 계신데 그 독재자의 기념관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분노해야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저는 이 분노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박정희 기념관이라는 역사의 어긋난 기록은 박정희의 독재와 베트남전의 악몽의 직·간접적 피해자라 할 우리 국민 모두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엽제의 고통과 싸우고 계신 어르신들이야말로 가장 분노할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믿습니다. 어르신들이나 저희 젊은 세대들이나 진정으로 분노를 터뜨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이유로 역사를 호도하는 '박정희 기념관' 같은 것은 단연코 좌절되어야 할 기도일 것입니다.

신문기사를 읽고 분노한 나머지 주제넘게 어르신들께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부디 건강하십시오.

하니리포터 OOO 기자 myid2000@hanimail.com

편집시각 2000년07월27일10시27분 KST

 

<<두번째 글>>

역사를 되돌리는 사람들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UN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 (이하 3, 4, 5, 6조 생략) …

위의 글은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모든 국민들에게 암기하도록 강요했던 소위 「혁명공약」이라는 것이다. 박정희의 쿠데타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어찌 한 두 가지이랴마는 그 중에 오늘 우리가 꼭 되새겨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역사적 발전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박정희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치학적 견지에서 박정희의 쿠데타 - 장기집권 - 유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도는 4·19로 태동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반혁명이었다. 부마항쟁과 10·26으로 또 다시 기회를 잡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신군부의 등장으로 좌절한 것이나 6월항쟁의 성과가 야권분열로 민주정부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그 시대의 반역사적 시도가 역사적 흐름을 되돌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프랑스 혁명의 결과를 이전으로 되돌린 빈 체제의 복고주의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세계사적인 의미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바로 지금 2000년의 한반도가 적어도 우리 민족에게만큼은 프랑스 혁명에 버금가는 중대한 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반세기 동안 분단된 채 대립해온 우리 민족이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로소 평화에의 길을 가고 있으며 그것은 한반도를 지배해온 냉전적 구조의 해체와 함께 통일 한국의 21세기를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점차 현실화해가고 있다.

불과 4년 전인 96년 8월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한 학생들이 '김부자의 쇠파이프부대'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했던 것과 지금, 2000년 8월에 주한미군 문제나 국가보안법의 개폐문제가 공공연하게 담론화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이 남북의 정상에 의해 합의된 것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격변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이 격변기에도 예외 없이 그 역사적 흐름을 후퇴시키려는 시도가 존재한다. 이미 남북 정상회담 시기부터 계속된 조선일보의 줄기찬 반북 이데올로기 고수 노력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다분히 감정적인 남북관계에 대한 부정적 발언들이 그 예이다. 그리고 며칠 전 국정원이 한 고교 교사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사건도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교사가 정말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만한 어떤 언동을 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항의하고 있고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주변의 진술을 볼 때 나는 국정원이 구태를 벗지 못하고 예전의 용공조작과 비슷한 일을 벌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는 다만 나의 추측일 뿐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좀 다른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우선 하고싶은 말은 과연 지금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더 이상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단지 국가보안법만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이적 단체의 수괴를 만난 대통령이나, 그 이적단체의 수괴에 대해 호의적 기사를 내보낸 언론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도 신고하지 않는 전국민 모두가 유죄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의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지나친 억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안다. 이건 억지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억지다. 수십년간 한반도를 고통으로 물들여온 억지다. 나는 검찰이 정상회담 이후 '한국사회의 이해'의 장상환·정진상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나 정상회담 기간중의 소위 '인공기 사건'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 않은 것, 그리고 지난 광복절에 범민련 주최의 통일 대축전을 사실상 승인한 것 등을 통해 검찰 또한 이제는 국가보안법의 억지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의 현직교사 연행은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는 앞에서 언급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역행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정원은 아직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사고를 하지 못하고 과거의 냉전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뚜렷하게 증명한 것이다.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지면 죄인이고, 죄인임이 의심스러우면 일단 잡아가고, 증거는 그 다음에 갖추면 그만이라는 식의 사고가 21세기의 벽두에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도 조선일보도 그리고 역사를 되돌리려는 모든 사람들도 알아야 할 게 있다. 박정희의 쿠데타나 신군부의 등장이 우리의 역사를 일정정도 곡해한 것은 사실이나 결국 '민주화'라는 대세를 막지는 못했고, 빈 체제가 프랑스 혁명을 왜곡했으나 자유·평등·박애의 전파를 막지는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이제 그와 같은 역사의 역행을 좌시하고 있을만큼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을!

칼럼니스트 OOO myid2000@hanimail.com

편집시각 2000년08월30일16시00분 KST



<2007.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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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차 떠난 여행길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생각거리는 두 개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결혼이었다. 나이가 나이이기도 하고, 축의금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은 시간이 갈 수록 늘어가는 처지인 데다가, 결혼에 대한 압박을 상당부분 받고 있는 처지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 단상들을 간략히 적어보고 싶은 충동에 갑자기 빠지게 되어 이렇게 컴앞에 앉았다. 별다른 근거없이 한 생각들인지라 논리적이지도 근거가 명확하지도 않은 반면에, 내용 자체는 마치 근거라도 있는 느낌을 주기 십상인 상념이었는지라 논리적/학술적 반박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뭐 상관없다... 반박이야 하는 사람 자유니까...


1. 결혼, 기원이 뭘까?

결혼의 기원은 뭘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이행에 관해 주워들은 문화인류학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종족보존이 중대한 임무였던 까마득한 옛날에 - 뭐 종족 보존은 여전히 중대한 임무이긴 하다... 왠지 므흣~ (?) - 군혼제가 유지되다보니 애가 태어났을 때 얘 아빠가 누군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어도, 엄마가 누군지는 너무나 명확했다는 것이 모계사회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중의 하나라는... 식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여기서 문화인류학에 정통한 누군가가 나타나 'STOP' 하신다면 그저 OTL... -_-;;)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여기에 근거해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①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다. ② 근데이건 뭐 애를 낳으면 이게 내 앤지 남의 앤지 알 수가 없다. ③ 억울하다. ④ 에이~ 열여덜! 군혼 못하게 해버리자.

이래서 나온게 결혼 아닐까? (일부다처제였을 공산이 커보이지만...)

즉, '자연스러운' 군혼제에서 '부자연스러운'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나온 것은 남자들의 소유욕이 그 원인 아니었을까... 라는 이야기다. 일단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 3g 추가~


2. 결혼, 어떤 작용을 하고 있을까?

사람이 살면서 한 사람만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어렸을 땐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소설에 나오는 남녀처럼 언젠가 운명적인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만 평생 사랑하고 그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애도 낳고 오손도손... 살 줄 알았다는 말이지. 그러다가 정말 정말 사랑하게 된 누군가를 만났다. 근데 그 사람은 나를 안좋아하더군...-_-;; 몇 년인가 앓다가 잊었다. 뭐 대충 잊은 듯했다. 그 다음에 누굴 또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번엔 그 사람도 날 사랑해주더군. 정말 행복했다. 이제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지. 근데 어찌저찌해서 깨졌다. 또 누굴 만났다. 몇 년 있으니 또 깨지더군. 그리고 또 누굴... 또... 또 누굴... 또...

몇 번 그러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 그거 별거 아니다. 사랑할 때는 누구보다 가깝던 사람이 돌아서니 순식간에 남남이더군. 구차하게 매달려본 적도 있고, 헤어졌다 또 만나본 적도 있고, 쿨한척 돌아서서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그래봤자 별거 없었다. 헤어질 땐 곧 죽을거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 잊쳐지더군.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게 사랑이고, 유효기간이 상당히 명확하게 - 그 길이는 사랑의 품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게 또 사랑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났다 이별했다는 반복하며 산다면?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별만큼 피곤한게 없다. 이건 뭐 밥맛도 없고, 일(공부)도 손에 안잡히고, 뭘 해도 즐겁지가 않고 심하면 눈물도 난다. 한 두 번 경험해보고 나면 학습효과에 따라 다시는 하기 싫어지는게 이별이거덩.

그 피곤함을 덜어주는게 바로 결혼이다. 일단 결혼을 하면 시간이 지나서 상대방이 지겨워지더라도 상당히 강력한 원인이 없다면 이별하긴 힘들다. 욱해서 이별해버리자니 그동안 산 정도 있고, 애도 눈에 밟히고, 재산분할이다 위자료다 이런 것도 피곤하다. 주변 사람들의 고까운 시선도 만만치 않지. 다시말하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보통의 '이별'이 파생시키는 고통에다가 세배, 네배의 고통을 더 얹어줘서 어지간해서는 이별할 엄두도 못내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진 제도라는 거지.

그러다보니 억지로 억지로 같이 사는거다. '어이구.. 그래도 산 정이 있는데 내 아내가(남편이) 제일이지..' 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가면서...

이것이 바로 놀라운 결혼의 효과!! 그래서 부정적인 사고 3g 추가!


3.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더군

내가 이런 이야기를 씨부릴라치면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더군.

사람A : 니가 아직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못만나서 그래!
IntiFadA : 만나봤거덩? 정말 죽어도 좋을만큼 사랑해봤거덩? 그래봤자 상처만 남더라 뭐...

사람B : 어차피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그래도 해봐야지?
IntiFadA : 말 한 번 뒤집어볼까? (독신을) 어차피 해도 우회 안해도 후회라면 (독신을) 그래도 해봐야지?
이건 말 안되냐? 그리고 그 말씀 하시는 당신! 당신 결혼했지?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결혼 안해보지도 않고서 뭘 이래라 저래라야?

사람C : 남들 다 안하는 결혼 왜 너만 안한다고 뻗대?
IntiFadA :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D : 꼭 너처럼 말하는 사람이 젤 먼저 결혼하더라...
IntiFadA : 뭐 미래는 모르는거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당장 결혼해도 빠른게 아니라는 거~

사람E : 너...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곁에 없는거 아님?
IntiFadA : 움찔...


4. 결론

뭐...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는 알 수 없는거니 장담할 일은 아니겠지만....

여행중에 향후 몇년간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게 무슨 결심이야?) 좀 말이 되게 말한다면 정말 결혼하고 싶다... 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절대 등떠밀려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_-;;





<2006.08.26>
AND
1
내가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것.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선수 중 하나라는 것.
일본 국대의 중심이자 유럽무대에서도 제법 성공한 선수라는 것.
축구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나 패션에 대해서도 상당한 재질을 가진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것.
자신이 속한 일본 국가대표팀과 그 선수들과 감독을 사정없이 비판하는 까칠한(?) 남자라는 것.
그리고 최근에 축구선수로서의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다.

물론 나도 다른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처럼 축구라는 운동을 관전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동시에 다른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K리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_-;;)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당연히 한국 축구를 중심으로 관심을 가졌으며, 세계 적으로는 리켈메나 호나우딩요, 혹은 웨인루니를 보며 열광했을 뿐 나카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줄 여지는 별로 없었다.

그저 이웃나라 일본 최고의 플레이어이기에 3g의 관심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전부이다.

2
2006년 월드컵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브라질에 참패 했을때, 나 또한 그 경기를 본 다른 많은 한국 사람들처럼 약간의 통쾌함과 약간의 비웃음을 띄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바닥에 쓰러져 눈물을 흘리는 나카타 히데토시의 모습이 보였다.

근성이 없다... 열정이 없다... 라는 이야기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던 일본 국대에서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패배에 통곡하는 그의 모습은 묘한 언밸런스를 느끼게 했다. 그 눈물의 주인공이 지난 몇 년간 일본 국가대표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일본국대를 실랄하게 비판한 까칠한 남자라는 것 또한 어쩐지 상징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그의 눈물은 나름대로 내 기억에 각인되었나보다.

3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모두 월드컵을 마감한 어느 시점에 그의 은퇴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은퇴를 알린 글을 읽게 되었다.

“인생이란 여행이며, 여행이란 인생이다”

라고 이름붙여진 그 글을 통해 그는 담담히 자신의 축구인생을 돌아보며 그는 '축구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일 따름이며, 그런 한 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의 다음 단계를 여행할 때가 되었다.'라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그의 이런 쿨한 모습은 한국적 정서와는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만 29세의 한창 나이이며, 아직도 피치에서 뛸 수 있는 체력과 기량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최후의 최후까지 그라운드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라는 것이 우리에겐 좀 더 익숙하고 박수치고 싶어지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한국과 일본의 차이인지, 대다수의 사람들과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사람과의 차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느쪽의 자세가 올바른가, 혹은 우월한가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무엇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그 글을 읽고, 짧은 지식이나마 그의 커리어를 생각해보며 나는 솔직하게 나카타라는 사람에 대해 경탄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사람, 존경할 만하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
내가 술을 좀 마시고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타이밍이 되면 종종 지인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생은 한 판 승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인생은 단숨에 승부가 나는 한 판 승부가 아니며 작은 승부의 연속이기 때문에 한 번의 실패에 과도하게 절망할 필요도 없고, 한 번의 성공에 과도하게 기뻐할 필요가 없다... 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한 편으로 자신의 As-is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다음번의 승부에서의 역전을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그것이 마음에 쏙 드는 상태라 해도 다음 승부에서 역전패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자기보다 훨씬 성적이 좋지 않던 녀석이 사회에 나와보니 자신보다 더 인정받고 있다거나, 혹은 사회 초년병 시절 취업도 못하고 있던 녀석이 장사에 성공해서 내가 넘보기도 힘든 부자가 되어 있다거나 하는 종류의 경험.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그 사람이 운이 좋았다거나 내가 운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를 앞서있던 시점에서의 성과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을때, 그는 절치부심 다음번의 승부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상황을 봤을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해하거나 질투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다음번 승부를 준비하는 일이다.

항상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 승리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 번의 승리로 인생 전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한 번의 승리에 만족하고, 한 번의 패배에 절망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버리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악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렇게 떠들어대고 있는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5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남자는 축구선수로서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아시아라는 척박한 축구 환경에서 그 정도 레벨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서 기본적으로 그를 존경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변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 부드러운 방식은 아니었지만 - 채근하고, 그럼에도 다가온 패배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열정까지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관점에서 차범근,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같은 선수들도 존경하고 사랑한다. 당연히...)

하지만 그를 더욱 존경하게 만든 것은 한계에 부딛혔다고 느낀 시점에서 미련없이 자신이 가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쫓는 그의 모습이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는 것이 근성부족 때문이 아니라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또 다른 열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그 모습을 존경한다. 그는 축구선수라는 현 단계에서 그가 임한 하나의 승부에서 제법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다음번의 승부를 겨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하바드 MBA를 겨냥한 그의 목표가 달성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열정과 노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아마도 그가 지금의 삶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그는 그가 몸담은 피치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노력은 그의 삶이 또 다른 스텝을 밟을 때 엄청난 자양분이 될 것임은 명확하다.


새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200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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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마땅히 그 시기에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제끼고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도대체 온라인 게임의 매력이 뭐냐고?

한숨을 쉬며 그 친구가 말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말이야... 인생을 새로 쓸 수가 있어. 게임상에서 또다른 나를 창조할 수 있는거지. 그 과정을 통해서 현실에서의 내가 가진 초라함을 잊을 수 있단 말이야..."

그 친구는 당시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이었고,

그 상황이 자신과 온라인게임의 연결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는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온라인게임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그래서 때때로 '내가 다시 스무살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아직까지는 게임을 매개로 나의 지나온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대단치 않은 인생일지라도 나에겐 그게 전부이니까.



<200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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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알베르 까뮈)

"세상에 완벽한 문장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이상형은 자신과 타인을 가두는 감옥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출처는 나)

"겨울밤, 단 한명의 거지가 떨고 있어도 우리에게 행복한 밤잠의 권리는 없다." (신영복)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랴" (니체)

"모든건 스쳐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순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무라카미 하루키)

"절대주의 사고를 주입받은 사람은 그것이 풀어져 자유로와져도 그 자유를 구사할 수 없어, 결국 다른 절대적인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

"流水逢河海 - 흐르는 물은 바다에 닿는다." (신영복)


      ---- 기억에 의존해 적었으므로 디테일은 틀릴 수도 있음...^^;


<200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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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에게 범한 몇 가지 죄로 인해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며 끝없이 바위를 밀어올려야 했던 시지프스. 까뮈에 의해 '인간의 운명적인 부조리'로 불리게 된 이 형벌을 묵묵히 감내하며 끝없는 노동으로 신들에게 대항한 그는, 그 노동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노동은 도전이었을까, 순응이었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와 같지는 않을까...


<200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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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여자들에 대한 편견


1. 여자들이 먼저 이별을 말할 때는 무언가 대안이 있을 때이다.

  - 여기서는 두 가지 개념정의가 필요하다. 첫째, 여기서 '먼저 이별을 말하는' 것은 여자에게 이별의 동인이 있을 때를 말한다. 즉 남자가 조낸 속썩이고 바람피고 구라치다 걸리고 욕하고 등등 뭐 이래서 여자가 마지못해 '아이 ㅅㅂ 헤어져 이쉑!'하는 것은 해당없다는 이야기이다.

  - 둘째, 대안은 꼭 다른 남자를 사귄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호감이 가는 사람이나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처럼 낮은 '가능성' 수준의 대안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단, 분명히 현재 사귀는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가 주변에 있다는 의미이다.

  - 이 두 조건을 만족한다면 위의 명제는 대략 80% 이상 적중한다. 내 경험에는 그랬다.

  - 이 글을 보면서 '난 남친이 있을땐 남친한테 충실하느라 대안따위 만든적도 관심 가진적도 없어!' 라고 하시는 여자분... 당신은 80%의 확율로 먼저 이별의 동인을 제공한 적이 없다. 따라서 당신도 예외는 아니란 이야기지...


2. 여자들은 일단 헤어지면 남자들보다 훨씬 깔끔하게, 그리고 빨리 잊는다.

  - FILO와 LIFO라는 것이 있다. 남/녀의 사랑을 비교한 것인데, 남자는 First in Last Out 그러니까 먼저 사랑을 시작하고 늦게 사랑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고, 반대로 여자는 Last in First Out 즉 늦게 시작해서 빨리 끝난다는 이야기다.

  - 하지만 이게 사랑의 깊이까지 반영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남녀간의 사귀는 패턴을 보면... (1)눈이 맞는다. (2) 남자가 열심히 대쉬한다.(이 기간에 남자는 여자한테 정말정말 잘한다.) (3) 여자의 사랑이 서서히 표면화된다. (4) 본격적으로 사귄다. (5) 남자가 갑자기 조낸 못하기 시작한다. (6) 헤어진다. (7) 남자는 한동안 술 조낸 처먹는다. 1/2 이상의 확율로 술처먹고 헤어진 여자한테 전화질한다. (8) 여자는 깨끗이 잊고 잘 산다.

    바꿔말하면 여자는 사랑할때 사랑에 정말 충실하고 사랑 안할땐 자신의 다른 삶에 충실하다. 남자는? 반대다. 한 마디로 현명한 여자와 어리석은 남자...

  - 이 글 보고 발끈하는 남자분... 워워~ 진정하시고... 사실 쫌 그러지 않아?

  - 그러니까 제발 술먹고 여자한테 전화질하지 말자. (물론 나도 몇 번 해봤다. ㅇㅅㅇ)


3. 1과 2의 결과로 남녀가 이별후 여자가 먼저 다른 남자를 만날 확율이 1/2보다 높다. 카사노바 제외.


4. 여자들은 대체로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

  - 술자리에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남자는 여자의 외모(느낌? 스타일? 다 같은말)를, 여자는 남자의 돈(능력? 가능성? 다 같은 말)을 제일 중요시한다.

  -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남자는 어린놈이나 늙은분이나 똑같지만 여자는 나이가 먹을수록 더하다. 보통 나는 25세를 경계선으로 본다.

  - 내가 보기엔 위의 4가지중 이게 젤 적중율 높다. 대략 90% 내외.

  - 물론 돈이 유일무이한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점수화하면 젤 높을걸?


대충 이렇다. 위의 4가지는 내가 경험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한 결과를 취합한 것이다. 사람들과 견해를 나누었을때 공감도도 꽤 높았고 그 결과 내 안에 편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하나만 생각해보자...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이 전체 사람 숫자에서 얼마나 될까? 그 중에 또 저런 케이스를 함께 겪은 사람이나 견해를 나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그게 의미있는 모집단일까?

반대로 말해봐?

저 법칙 같지도 않은 법칙의 예외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가진 편견으로 인해 실제의 자신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나에게 각인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내 주변에도 적절한 반례가 있다. 심모양이라고... 위의 네가지 다 해당 안되는듯...ㅇㅅㅇ)

편견은 편견일 뿐이다. 전세계 인구의 n%이상을 적절히 조사해보지 않는한 편견에 근거따위 없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아무리 '이게 맞다...' 싶더라도 되도록 그걸 너무 강화하여 인지하지 말길 바란다.

OPEN MIND.. 알지?

P.S. :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편견투성이의 인간이다. 뭐... 뭐가 옳다고 다 그대로 하면서 살았으면 내가 성인군자게?

P.S.2 : 반말해서 미안하다... 내가 좀 4가지가....;;;

P.S.3 : 최근 본 편견의 젤 좋은 예는 혈액형. 혈액형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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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체의 함정, 습관의 함정, 그리고 관계의 함정이라는 3가지 관문을 모두 돌파한 나는 나의 금연작전이 거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시점 이후로 나는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커피를 마시든, 옆에서 친구넘이 담배를 들고 물구나무를 서서 춤을 추든 그닥 흡연의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 이 과정까지가 예상보다 너무 쉬웠기에 '뭐야? 금연 별거 아니네?' 하기도 했. 그리고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몇 차례 스트레스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뿐히 금연을 이어나갔고 그 몇회의 스트레스 또한 그럭저럭 참고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만에 맑은 공기를 맡게된 나의 허파꽈리가 그분 만난 임퐈마냥 환희에 떨고 있을 즈음에 나에게 한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2005년 1월 즈음, 그러니까 금연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금연 기간보다 조금 더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몇 차례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이젠 익숙해질만한 데미지인데도 좀체로 무던하게 넘기게 되지 못하는 이별의 아픔에 떨고 있을 즈음에 난 친구와 술을 한 잔 먹게된다.

한 잔, 두 잔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안주로 먹던 감자탕이 말라 비틀어져갈 즈음, 주변의 온갖 소리들이 조금은 멀어진채 현실감을 상실해가고 과연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뱃속에서 또아리틀 그 즈음에 나는 나의 손에 낯선 무엇인가가 들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낯설지만 익숙한 그 넘은, 바로 불이 붙은 담배였다.

묘한 위화감... 그리고 묘한 편안함. 그 순간 난 깨달았다. 난 그동안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쭈욱 참아온 것임을.

'이걸 어쩐다...?'

그래도 10년 흡연인의 자존심이 있지. 장초를 끌 수는 없고 난 그냥 불붙인김에 냅다 빨아대며 나의 금연행진을 어찌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 빠진다. 어차피 무너진거 그냥 다시 피워? 이거 한 대는 그냥 실수로 치부하고 다시 끊어?

사실 당연히 후자로 가는게 맞다. 하지만 오랫만에 만난 담배란 놈의 몸서리처지는 매력은, 특히 고뇌 에 빠졌을 때 뿜어대는 담배연기의 뇌쇄적인 매력은 나에게 비겁한 결론을 짓게 한다.

'뭐... 술마실 때만 피는거야... 술마실 때만.'

술마실 때만 타협하자. 어차피 이성이 무뎌지는 순간이니까. 라는 생각. 주변에 술마실 때만 담배 한가치씩 태우는 사람이 꽤 있기에 내린 결론이지만 사실 그건 아니다. 혹시 지금 금연 진행중인 이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절대 타협하지 마라. 절대 한 가치도, 아니 한 모금도 타협하지 마라. 한걸음 물러서면 그게 두걸음, 세걸음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실제로 난 그날 이후 4~5개월 가량 '술마실 때만 피우는' 상태를 유지했지만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현재의 나에 대한 회의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었던 5월 즈음, 결국 흡연의 세계로 컴뾝하고 만다. 한걸음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의지박약함에 감탄사를 던지며 그렇게 다시 담배를 피우며 오늘까지 오고 있다.(결국 그때 그녀와의 이별은 불과 2달만에 제자리로 되돌려졌고, 그새를 못참고 담배핀 나만 삽질한 샘이 되었다.-_-)

결국 담배가 무서운 것은 육체적 중독, 육체적 의존 때문이 아닌 정신적 중독, 정신적 의존 때문이다. 술마실때 피우고 싶은 것, 밥먹고 피우고 싶은 것, 커피 마실때 피우고 싶은 것 그걸 모두 합쳐놔도 고민에 빠졌을때, 사는게 ㅈㄹ맞다고 느낄때 겪게 되는 담배 한가치의 유혹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결국 진정으로 담배를 끊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금연자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강렬한 정신적 데미지를 극복했을 때, 그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뒤에 무언가가 또 있을지는 모르지만...

담배는 끊는게 아니라 참는거라고 한다. 30년이고 40년이고, 특히 정신적 요인으로 인한 흡연욕구는 일단 그 맛을 본 사람이면 절대 감소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 지금 금연하시는 분들. 죽을 때까지 한 번 참아보시라. 담배를 끊었으니 살기도 더 오래 살테고 그 시간내내 오나전 고통스럽게 참는거다. 난 뭐 이대로 담배를 피우다 조금 일찍 죽거나, 아니면 또다른 무슨 계기가 있을때 당신들과 함께 참기대열에 다시 동참할지도 모르겠다. (뭐 나랑 같이 담배 끊기로 약속했고 먼저 피는 사람이 쏘기로 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술먹고 한 말인지 날조인지 난 잘 기억 안나니 패스~ ㄲㄲ)

그리고 아직 담배 피운 적이 없는 분들. 훠이~ 애시당초 손대지 마라. 그 맛을 일단 느끼고 나면 (여기서 한 두대 피워보고 '난 맛없던데..' 하시는 분들, 즐이다. 당신은 담배를 피운게 아니라 그냥 종이를 태워본거다.) 평생 고통스럽게 참던지 일찍 죽던지 양자택일이니까...

                                                                                            끝.


<200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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